헨델 메시아 초연 (더블린 공연, 할렐루야 코러스, 카스트라토)

1742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작은 공연장 닐스 뮤직 홀에는 평소보다 두 배 가까운 관객이 들어찼습니다. 신문 광고에는 "여성분들은 후프스커트를 입지 말고, 신사분들은 칼을 두고 오시길"이라는 요청이 실렸죠. 좌석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날 초연된 작품이 바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였고, 저는 이 곡을 음악 시간에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장대함에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더블린 공연, 메시아 초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은 1741년 여름, 친구이자 대본가인 찰스 제닝스가 보낸 성경 구절 편집본을 받고 불과 24일 만에 메시아 전곡을 완성했습니다. 8월 22일 작곡을 시작해 9월 14일 완성했으니, 3시간이 넘는 대작을 악보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속도였죠. 하지만 헨델은 이 작품을 런던이 아닌 더블린에서 초연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런던의 오페라 시장은 헨델에게 냉담했습니다(출처: 영국 왕립예술원). 귀족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에만 열광했고, 헨델이 고용한 두 명의 프리마돈나 파우스티나 보르도니와 프란체스카 쿠초니는 무대 위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는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왕세자비가 관람 중이던 극장에서 두 소프라노가 싸우고, 관객들까지 편을 갈라 난투극을 벌인 사건은 '라이벌 퀸 스캔들'로 불리며 헨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줬죠. 제가 이 일화를 처음 알았을 때는 솔직히 현대 연예계 팬덤 싸움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더블린은 달랐습니다. 아일랜드 수도는 당시 영국령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독립적인 분위기를 유지했고, 헨델의 음악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헨델이 더블린에서 연 모든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고, 현지 언론은 그를 극찬했습니다. 런던의 유행과 편견에서 자유로운 관객들이 오히려 예술의 진가를 알아본 셈입니다.

할렐루야 코러스와 기립 관습의 탄생

메시아는 오라토리오(Oratorio)라는 형식으로 작곡됐습니다. 오라토리오란 성경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하되 무대 장치나 연기 없이 음악과 가사만으로 전달하는 대규모 성악곡을 뜻합니다. 오페라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만큼 음악 자체의 힘에 집중할 수 있죠. 헨델은 이 형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부활까지를 3부 구성으로 담아냈습니다.

그중에서도 2부 마지막에 등장하는 '할렐루야 코러스(Hallelujah Chorus)'는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합창곡 중 하나입니다. 1743년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열린 공연 중, 조지 2세가 이 곡을 듣다가 감동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섰고, 왕이 서면 모두가 따라 서는 것이 예의였기에 전체 관객이 기립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후 할렐루야 코러스가 연주될 때마다 관객이 일어서는 관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1. 1742년 더블린 초연: 자선 공연으로 수익금 전액 기부, 관객 700명 돌파
  2. 1743년 런던 재연: 조지 2세 기립으로 '할렐루야 기립 전통' 시작
  3. 1750년대 이후: 파운들링 병원 자선 공연으로 매년 정기 상연

저는 대학 시절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메시아 연습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할렐루야 코러스 부분을 부르다가 숨이 차서 쓰러질 뻔한 기억이 있습니다. 프로 합창단도 이 곡을 준비하려면 몇 달씩 연습해야 하는데, 저희 같은 아마추어는 정말 버거웠죠. 그만큼 음역대도 넓고 박자도 복잡해서 노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체력 소모가 상당합니다.

카스트라토와 '울게 하소서'의 비극적 아름다움

헨델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카스트라토(Castrato)입니다. 카스트라토란 변성기 이전에 거세 수술을 받아 소프라노나 알토 음역을 평생 유지한 남성 성악가를 뜻합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비윤리적이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이들이 최고의 오페라 스타로 대우받았죠. 헨델은 세네시노, 파리넬리, 구아다니 같은 전설적인 카스트라토들과 작업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위한 아리아를 수없이 작곡했습니다.

특히 오페라 '리날도(Rinaldo)'에 나오는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저는 이 곡을 중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셔서 처음 접했는데, 그때 카스트라토라는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런 고통을 감수했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왔죠.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면 그 결단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가난한 가정의 부모가 생계를 위해 아들을 팔다시피 한 경우였다고 합니다.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두 사람의 음악 스타일은 사뭇 달랐습니다. 바흐가 엄격하고 구조적인 대위법을 추구했다면, 헨델은 좀 더 자유롭고 서정적인 선율을 선호했죠. 바흐의 음악이 건축물처럼 정교하다면, 헨델의 음악은 강물처럼 흐르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물론 헨델은 남성이었고, 이 별명은 단지 음악적 특성을 비유한 것일 뿐입니다.

헨델은 1759년 4월 14일, 자신이 36년간 살았던 런던 브룩 스트리트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으로 치러졌고, 3천 명이 넘는 조문객이 몰렸습니다. 무덤 위에는 루빌리악이 조각한 실물 크기의 조각상이 세워졌는데, 손에는 메시아의 악보 중 '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내 구세주 살아 계심을 나는 아네)' 부분이 새겨져 있습니다. 독일 출신이었지만 영국을 제2의 조국으로 삼고 이름까지 조지 프레데릭 핸들(George Frideric Handel)로 영국식으로 바꾼 그는, 영국 음악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요즘 저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누군가의 해설이나 평론을 먼저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음악을 먼저 듣고 제 느낌을 정리한 뒤에 배경 이야기를 찾아보는 편이 훨씬 순수하게 다가오더군요. 마치 박신양이 초등학교 선생님의 꾸지람 때문에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다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붓을 잡은 것처럼, 예술은 타인의 평가보다 내 안의 감각을 먼저 믿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헨델의 메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뭐라 해석하든, 일단 직접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할렐루야 코러스가 나올 때 자리에서 일어서 보세요. 300년 전 더블린 관객들이 느꼈을 그 전율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을 겁니다.

great music hall, fishamble street in dublin
Ireland, Dublin Grafton Street 예술가들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 거리
--- 참고: https://youtu.be/O6j4ILByR-0?si=WCcZM05TttTcsail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음악의 아버지 바흐 (푸가, 토카타, 골드베르크)

하이든 생애와 음악 (목수의 아들, 에스테르하지, 런던, 마지막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