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완벽주의, 교향곡 1번, 인간 브람스

작곡을 하다 보면 첫 모티브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2~3마디의 짧은 악구라고 해서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곡 전체의 출발점이 되는 만큼 부담감이 상당합니다. 저도 대학 시절 오선지 위에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브람스는 이런 완벽주의 성향이 훨씬 더 극단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악보를 그냥 태워버리고, 교향곡 1번을 완성하는 데만 20년이 넘게 걸렸다는 기록을 보면 그의 창작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브람스의 완벽주의 성향과 창작 태도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베토벤, 바그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그의 창작 과정은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극도로 신중하고 느렸습니다. 브람스는 대위법(Counterpoint)이라는 기법에 능숙했는데, 이는 여러 개의 선율을 동시에 진행시키면서도 화성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작곡하는 고난도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의 멜로디만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멜로디를 동시에 엮어야 하므로, 작곡 난이도가 훨씬 높아집니다.

젊은 시절의 수염없는 요하네스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 : 젊은 시절의 브람스, 수더분해 보이는 수염긴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꼬장꼬장한 젊은 날의 브람스 초상화를 가져와 봤다..

저도 작곡을 할 때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다작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시절 지도교수님께서 "좋은 작품은 한 곡에 매달려 나오는 게 아니라 다작을 하며 경험을 쌓아야 그중에서 명곡이 탄생한다"고 조언하셨지만, 저는 여전히 마음에 드는 모티브 하나가 나올 때까지 오선지를 붙들고 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브람스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초고나 스케치 대부분을 직접 없애버렸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악보는 아예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태도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창작 속도를 극도로 느리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브람스의 완벽주의는 단순히 성격 문제가 아니라 당시 음악계의 기대와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1853년 작곡가이자 평론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이 브람스를 "젊은 독수리"라고 극찬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브람스는 일약 주목받는 신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오히려 브람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베토벤의 후계자로 불리는 만큼 실망시킬 수 없다는 압박감이 그를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의 창작 속도는 더욱 느려졌습니다.

교향곡 1번 완성까지 20년이 걸린 이유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1860년대에 작곡을 시작해 1876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무려 20년이 넘게 걸린 셈입니다. 교향곡(Symphony)이란 오케스트라 전체를 위한 대규모 관현악곡으로, 보통 4악장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작곡가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르입니다. 브람스는 이 곡을 쓰는 동안 수없이 고쳐 쓰고 폐기했으며,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의식하며 창작에 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클래식 음악 연구).

제가 작곡을 배울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 곡에 너무 매몰되어 일평생 몇 곡 쓰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브람스는 정확히 그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다작보다 완성도를 택했고, 그 결과 남긴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교향곡 1번이 초연되었을 때 청중과 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극적인 힘과 풍부한 관현악법에 열광했고, 브람스는 비로소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브람스의 창작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1.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과 대위법을 고수하면서도 낭만주의적 감정 표현을 극대화했습니다.
  2. 불규칙한 리듬과 비대칭적인 프레이징을 사용해 긴장감과 흥분을 유도했습니다.
  3. 초고를 여러 차례 폐기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이런 작업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작품의 밀도와 깊이를 보장했습니다. 브람스는 빠르게 많은 곡을 쓰는 대신, 적은 수의 곡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의 핵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가도 졸았던 리스트 공연, 그리고 인간 브람스

브람스에게는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피아노의 대가 프란츠 리스트의 공연을 관람하던 중 브람스가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리스트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고, 그의 공연은 유럽 전역에서 화제였습니다. 그런 공연 도중에 잠이 들었다는 사실은 브람스가 얼마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저도 대학 시절 참 많은 연주회를 다녔습니다. 동료나 선후배의 공연도 많이 보러 갔고, 유명 교향악단이나 유명 연주자의 공연도 자주 찾았습니다. 클래식 음악 연주회는 티켓 값도 만만치 않고 유명 연주자의 공연은 흔치 않은 기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장에서 졸음이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연주회장은 듣기 좋은 음악이 흐르고, 실내 기온은 평온하게 유지되며, 무대에는 따뜻한 조명이 밝혀져 있고, 객석 의자는 포근하며 조명은 어둡게 꺼져 있습니다. 잠들기에 최적의 환경이죠.

물론 모든 음악회에서 조는 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등을 의자 등받이에서 떼고 몸이 무대를 향해 달려 나가기라도 할 듯 집중하며 2~3시간의 공연을 관람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전날 작업하느라 밤을 샜거나 몸이 피곤한 상황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 해도 졸음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브람스가 리스트의 공연 중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대가도 사람이구나, 유명 연주회에서 잠이 들 수도 있구나" 하며 안도했습니다. 제가 너무 몰지각하거나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람스는 완벽주의자였지만 동시에 매우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나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같은 친구들과는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또한 그는 은둔형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하고 해석하는 데 열정을 쏟았습니다. 브람스의 음악은 복잡하고 치밀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고독, 열정, 그리고 삶에 대한 애정이 깊이 담겨 있습니다.

브람스는 1897년 4월 3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많지 않지만, 교향곡 4곡, 피아노 협주곡 2곡, 바이올린 협주곡, 현악 사중주, 피아노 삼중주 등 모두 클래식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연주회장에서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으며, 후대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브람스의 완벽주의는 때로 그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을 영원히 빛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브람스의 이야기는 완벽주의와 창작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빠르게 많은 작품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한 작품에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도를 높이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선택입니다. 저 역시 아직도 완벽주의 성향을 고치지 못했지만, 브람스처럼 그 성향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작곡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20년간의 고민과 수정이 만들어낸 음악의 깊이를 직접 느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 https://youtu.be/unRnWdy6zyc?si=Bx9jRD9WGbz620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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