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정말 천재였을까 (신동 신화, 작곡 과정, 영화 왜곡)
모차르트 하면 머릿속에 완성된 곡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 적는 천재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저도 중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모차르트를 처음 접하고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세상에 저런 천재가 있을 수 있나"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 자료들을 살펴보니, 우리가 알던 모차르트의 모습 중 상당 부분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었습니다. 신동(神童)이라는 타이틀 뒤에 가려진 그의 진짜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신동 신화: 3살에 피아노, 4살에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궁정 작곡가였고,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함께 일곱 자녀 중 막내였던 모차르트를 '볼페를(Wolferl)'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레오폴트는 볼페를이 3살 때 피아노를 치고, 4살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5살 때 첫 협주곡을 작곡했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당시 레오폴트는 아들의 재능을 유럽 각국 궁정에 소개하며 돈을 벌고자 했던 일종의 매니저였습니다. 즉, 신동 이미지를 과장할 동기가 충분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1762년 비엔나 황실을 방문했을 때, 6살 모차르트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갈채를 받았지만, 이는 철저히 아버지의 기획 아래 이루어진 공연이었습니다(출처: Biography.com).
제가 직접 피아노를 배워본 경험으로는, '작은별 변주곡' 같은 초급 곡도 처음 배울 때는 손가락 위치 잡는 것만 해도 한참 걸렸습니다. 그런데 4살짜리가 협주곡을 작곡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레오폴트가 손을 대거나 구조를 잡아준 것이었다고 합니다.
작곡 과정: 머릿속 완성곡을 옮겨 적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모차르트가 당구대 위에서 펜을 휘갈기듯 곡을 써내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당구공이 다시 손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오선지 위로 펜이 달리는데, 마치 즉흥 연주처럼 악보가 완성되는 듯했습니다. 살리에리가 질투할 만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신화에 가깝습니다.
19세기 잡지 편집자 요한 로슐리츠(Johann Rochlitz)가 모차르트 사후 수십 년 뒤 발표한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곡 전체가 내 머릿속에 거의 완성된 채로 서 있어서, 마치 아름다운 그림이나 조각상을 한눈에 보듯 살펴볼 수 있다." 이 편지는 모차르트가 신의 영감을 받아 완성된 곡을 머릿속에 품고 있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현대 음악학자들은 이 편지가 위조(僞造)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위조란 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처럼 꾸며낸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1777~1778년 모차르트는 어머니와 함께 아우크스부르크, 뮌헨, 만하임을 여행하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심각한 작곡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허풍을 떨었지만, 실제로는 단 한 곡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네덜란드 후원자가 의뢰한 플루트 협주곡 3곡 중 2곡만 제출하고 나머지 1곡은 이전에 쓴 오보에 협주곡의 솔로 파트만 플루트로 바꿔서 제출했습니다. 당연히 계약금 200길더를 받지 못했죠.
저도 글을 쓸 때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머릿속으로는 완벽한 문단이 떠오르는 것 같지만, 막상 키보드 앞에 앉으면 한 문장 쓰는 데도 한참 걸립니다. 모차르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현악 4중주를 쓸 때 가장 고생했다고 고백했습니다. 4중주(四重奏)란 네 개의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형식으로, 각 파트를 동시에 작곡해야 하므로 대위법(對位法, counterpoint) 구조가 복잡합니다. 대위법이란 서로 다른 선율을 동시에 진행시키면서도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작곡 기법을 뜻합니다. 모차르트는 "이게 제일 땀 나는 작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왜곡: 살리에리는 정말 모차르트를 독살했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는 평범한 재능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차르트를 질투하며 그의 죽음을 앞당긴 악역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전혀 달랐습니다. 살리에리는 당대 빈 황실의 수석 작곡가로, 모차르트보다 훨씬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을 존중했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자주 지휘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바빠서 받지 못한 프로젝트를 모차르트에게 넘겨주기도 했습니다(출처: Classic FM).
1786년 황제 요제프 2세는 두 작곡가에게 동시에 오페라를 의뢰해 같은 날 공연하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음악 코미디 '임프레사리오'를, 살리에리는 오페라 속 오페라라는 메타적 구조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결과는? 살리에리가 황제와 청중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살리에리가 질투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오히려 모차르트 쪽이 더 힘들었습니다.
모차르트는 1791년 건강이 악화되었고, 류머티즘, 부종, 발열,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같은 해 익명의 의뢰인이 '레퀴엠'(진혼곡, Requiem) 작곡을 요청했는데, 모차르트는 이를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편지에 "나는 죽을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레퀴엠을 쓰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의뢰인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발제크 슈투파크(Count Walsegg-Stuppach) 백작이었고, 그는 이 곡을 자기 작품으로 발표하려 했을 뿐입니다.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습니다.
2009년 연구에 따르면 1791~1792년 비엔나에서 젊은 남성 사망률이 평균보다 훨씬 높았는데, 이는 연쇄상구균 감염(streptococcal infection) 유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연쇄상구균 감염이란 세균에 의해 신장 기능이 망가지는 질병으로, 모차르트의 증상과도 일치합니다. 그는 1791년 12월 5일 새벽 1시,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베토벤을 "노력형 음악가"라고 소개하셨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됩니다. 살리에리처럼 대가를 동경하거나 부러워만 하지 말고, 베토벤처럼 삶이 다하는 날까지 노력하는 인간이 되라는 뜻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모차르트 역시 천재성만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습과 고민, 그리고 좌절 속에서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이었습니다.
모차르트를 둘러싼 신화 중 상당수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입니다. 3살 때 피아노를 쳤다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홍보 전략이었고, 머릿속 완성곡을 옮겨 적었다는 편지는 위조였으며, 살리에리가 그를 독살했다는 이야기는 영화 속 허구입니다. 진짜 모차르트는 슬럼프에 빠지고, 돈에 쪼들리고, 작곡하다가 땀 흘리던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다만 그 평범함 속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진정한 천재성이 아닐까요? 다음에 모차르트 소나타를 들을 때는 그의 고민과 노력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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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hloß Schönbrunn |
--- 참고: https://youtu.be/YjlA2cixtkM?si=p9sM7vktZMZsH0K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