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의 삶 (신동의 좌절, 재기의 연습, 스타의 그림자)
솔직히 저는 리스트를 그저 화려한 비르투오소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쩌면 제 이야기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동이었지만 한때는 "별거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독일 공연에서는 처참하게 실패했으며, 심지어 조롱까지 당했던 사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결국 19세기 최고의 슈퍼스타가 된 리스트의 이야기는, 늦게 시작하고 실패를 겪은 저 같은 사람에게도 묘한 위로가 됩니다.
신동의 좌절
리스트는 1811년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라이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음악가였고,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섬기며 하이든과도 친분이 있던 인물이었습니다(출처: Britannica). 어린 리스트는 6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9살 때 이미 귀족들 앞에서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감명받은 후원자들이 6년간의 학비를 대주겠다고 나섰고, 리스트는 빈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빈에서 그는 카를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체르니는 베토벤의 제자로 유명한 인물이었고, 리스트 역시 11살 때 베토벤 앞에서 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베토벤은 리스트의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체르니는 처음 리스트를 만났을 때 "재능은 있지만 운지법도 모르고 연주 스타일이 너무 혼란스럽다"고 평가했습니다. 신동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리스트는 기초가 부족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12살이 된 리스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영국과 파리를 오가며 투어를 조직했고, 리스트는 '리틀 리스트' 또는 '마스터 리스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공연을 다녔습니다. 14살에는 오페라까지 작곡했지만, 초연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는 점차 신동이라는 타이틀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오히려 종교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1827년, 아버지가 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스트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장송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이 곡은 단순히 아버지의 죽음만이 아니라 '신동으로서의 자신의 죽음'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재기의 연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리스트는 투어를 중단하고 파리에 정착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그는 피아노 교습에 몰두했습니다. 하루 평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당시 리스트는 자신의 교육 부족을 절감하고 있었고, 공연 대신 독서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평생 책을 모았고, 사망 당시 수천 권의 장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1831년 겨울, 20살의 리스트는 멘델스존, 쇼팽과 만났습니다. 하지만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쇼팽은 편지에서 리스트를 포함한 파리의 피아니스트들을 '제로'라고 불렀고, 멘델스존은 '딜레탕트(진지하지 않은 아마추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들에 비해 리스트는 작곡가로서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작품들은 스스로 부끄러워 거부했고, 새로운 곡도 없었습니다.
전환점은 1832년, 니콜로 파가니니의 공연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로, 그의 연주는 리스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리스트는 "나도 피아노에서 저 정도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드럼을 독학으로 시작했을 때, 유튜브에서 본 한 드러머의 연주가 제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불씨를 지폈습니다. 그 순간 이후 연습량이 달라졌던 것처럼, 리스트도 파가니니를 본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1833년, 리스트는 베를리오즈를 돕기 위해 그의 교향곡을 피아노로 편곡했습니다.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은 당시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베를리오즈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리스트는 자비로 악보를 출판하고 여러 차례 연주하며 이 곡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런 행동은 리스트의 평생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음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연주했습니다. 이 시기 리스트는 쇼팽과도 친해졌고, 쇼팽의 시적인 피아노 스타일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 파가니니의 공연을 계기로 비르투오소로서의 목표를 확립
-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편곡 및 자비 출판으로 인정받기 시작
- 쇼팽과의 교류를 통해 작곡 스타일 발전
스타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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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액츄얼리에서 슈퍼스타 연기한 빌리 맥 |
1840년대에 접어들면서 리스트는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초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독일에서는 거의 외면받았고, 파리에서도 비난받았습니다. 당시 파리에서는 탈베르크(Thalberg)라는 피아니스트가 최고로 인정받고 있었고, 리스트는 그에 비해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베를리오즈조차 리스트를 풍자하는 글을 썼을 정도였습니다. 리스트는 1840년 런던으로 건너가 탈베르크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로 공연을 이어갔지만, 경제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840년대 후반, 그는 주당 3~4회 공연을 소화하며 8년 동안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했습니다. 이 시기가 바로 '리스트마니아(Lisztomania)'라는 용어가 생겨난 때입니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만든 이 표현은 리스트의 공연을 보러 온 여성 관객들이 기절하고, 그의 장갑과 손수건을 찢어 가져가려 싸우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었습니다(출처: Classical Music). 한 동시대인은 리스트의 공연이 "청중을 신비로운 황홀경으로 끌어올렸다"고 기록했습니다.
리스트는 엄청난 수입을 올렸지만, 그 돈을 혼자 쓰지 않았습니다. 1842년 베를린 대화재 때는 재난 구호 공연을 열어 수천 명의 이재민을 도왔고, 학교와 자선단체에 꾸준히 기부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리스트라는 인물이 단순한 스타가 아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도 사실 비슷합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고, 제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스트는 그걸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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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 프란츠 리스트, 오른쪽 : 빌리 맥 |
하지만 리스트마니아 현상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습니다. 음악 자체보다 '리스트라는 인물'을 소비하려는 분위기가 짙었기 때문입니다. 여성 팬들이 그의 손수건을 차지하려 싸우고, 공연장에서 기절하는 장면은 분명 음악에 대한 감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상 숭배에 가까웠습니다. 요즘 아이돌 콘서트에서 펜라이트를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예술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 감정이 음악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스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 순간, 예술은 소비재가 되어버리니까요.
리스트는 결국 1847년 무렵 투어를 그만뒀습니다. 정확히는 절정기에 스스로 은퇴한 것입니다. 카롤리네 공주의 조언을 받아들여 작곡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죠. 만약 그가 계속 공연을 이어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전성기를 넘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설이 아닌 '한물간 스타'로 기억됐을지도 모릅니다. 리스트는 그 함정을 피했고, 덕분에 우리는 그를 19세기 최고의 비르투오소로 기억합니다.
리스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저는 제 늦은 출발이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스트도 20대 초반까지는 '별볼일 없는 과거의 신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연습했고, 결국 자기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저도 형편 때문에, 성격 때문에, 늦은 출발 때문에 망설였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리스트처럼 제 속도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려한 록스타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만든 음악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 참고: https://youtu.be/2B0fV6YabZU?si=lWpeuq4XOpPLGcHx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Franz-Liszt
https://www.classical-music.com/features/articles/franz-liszt-lisztoman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