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티 (건반 사랑, 모차르트 대결, 사업가, 소나티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소나티네 악보를 펼쳐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 예쁜 멜로디의 대부분이 무지오 클레멘티(Muzio Clementi)라는 작곡가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도 처음엔 그저 연습곡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 사람의 이력을 알고 나니 단순히 작곡가로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이더군요. 피아노 제작자이자 출판업자, 사업가까지 겸했던 클레멘티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피아노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건반을 사랑한, 클레멘티

 

무치오 클레멘티가  태어난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

클레멘티는 1752년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바흐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2년 후였죠. 그의 아버지 니콜로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음악 감독이었던 친척에게 건반 레슨을 부탁했습니다. 7세부터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한 클레멘티는 11세에 이미 대위법(counterpoint)을 배우고 있었는데, 대위법이란 여러 개의 독립적인 선율을 동시에 연주하는 바로크 시대의 핵심 작곡 기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의 멜로디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멜로디가 서로 얽히면서 조화를 이루는 복잡한 양식이죠.

13세에는 오라토리오와 미사곡을 작곡할 정도였으니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14세에는 로마의 산 로렌초 인 다마소 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그의 인생을 바꿀 만남이 찾아옵니다. 1766년 영국의 부유한 귀족 피터 베크포드 경이 로마를 여행하다가 클레멘티의 연주를 듣고 감탄했고, 그의 아버지에게 제안을 합니다. "아들을 제 영지로 데려가서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겠습니다. 21세까지 분기마다 교육비를 지원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클레멘티는 영국 블랜드포드 포럼 북쪽의 베크포드 저택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저택에서의 7년간 클레멘티는 하루 8시간씩 하프시코드 앞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바흐,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 헨델, 스카를라티 같은 바로크 거장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죠. 제가 피아노 조율사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조율 원리를 배우려 했던 것처럼, 클레멘티도 악기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의 집중적인 훈련이 훗날 그를 '피아노의 아버지'로 만드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모차르트와의 대결, 그리고 엇갈린 평가

1774년 21세가 된 클레멘티는 베크포드와의 계약을 마치고 런던으로 이주합니다. 지휘자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780년대 말에는 유럽 투어를 떠납니다. 파리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연주하는 영광을 누렸고, 빈에서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모차르트와의 피아노 대결이었죠.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는 두 음악가를 자신의 파티에 초대해 즉흥 연주 대결을 제안했습니다. 각자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즉흥 연주로 실력을 겨루는 방식이었는데, 황제는 둘 다 너무 훌륭해서 무승부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이 결과가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클레멘티는 오른손 기교는 뛰어나지만, 특히 3도 음정 패시지에 강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취향도 감정도 전혀 없는 기계(mechanicus) 같은 연주자입니다."

솔직히 이건 좀 심한 평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모차르트를 엄청난 천재로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이 대목에서는 그의 시샘이 느껴집니다. 반면 클레멘티는 모차르트에 대해 극찬만 늘어놓았고, 심지어 모차르트의 곡을 여러 편 편곡해서 출판하기까지 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클레멘티가 1770년에 작곡한 소나타 B플랫 장조 작품 24-2번의 주제 선율을 모차르트가 10년 후인 1780년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에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점입니다. 지금 저작권법으로 보면 명백한 표절인데, 당시에는 작곡가들끼리 선율을 차용하는 게 일종의 경의 표시로 여겨졌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클레멘티는 나중에 자신의 출판물에 "이 선율은 원래 제 작품입니다"라고 명시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사업가, 피아노 제작자이자 출판업자로서의 혁신

1783년 클레멘티는 영국으로 돌아와 이후 20년간 그곳에 정착합니다. 연주자, 작곡가, 교육자로 명성을 쌓아가던 그는 1798년, 45세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바로 사업의 세계였죠. 런던의 유명한 쇼핑 거리 칩사이드 26번지에 있던 출판사를 인수하고, 나중에는 피아노 제조업까지 시작합니다.

당시는 하프시코드에서 피아노포르테(pianoforte)로 건반악기의 주류가 넘어가는 과도기였습니다. 피아노포르테란 '여리게(piano)'와 '세게(forte)'를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인데, 쉽게 말해 연주자의 터치 강약에 따라 소리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악기입니다. 하프시코드나 쳄발로 같은 악기는 현을 뜯는 방식이라 강약 조절이 제한적이었지만,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타격하는 구조라 섬세한 다이내믹 표현이 가능했죠. 클레멘티는 연주자로서 쌓은 경험과 악기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피아노 제작에 뛰어들었고, 당대 최고 수준의 피아노를 만들어냈습니다(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저도 악기 제작에 관심이 많아서 철판을 구해다가 드럼 쉘을 만들어보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타악기를 직접 만들면서 소리의 원리를 이해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제 호기심은 클레멘티의 업적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단순히 악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피아노 음향과 터치감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연주자가 체격에 따라 음량 차이가 나는 것도 피아노포르테의 특성인데, 클레멘티는 이런 미묘한 차이까지 고려해 악기를 설계했다고 합니다.

출판업자로서의 클레멘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베토벤의 작품을 영국에서 출판할 수 있는 독점 계약을 맺었는데, 베토벤이 그만큼 클레멘티를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현대로 치면 대형 기획사 대표 겸 악기 제조사 CEO 같은 역할을 혼자서 다 해낸 셈이죠. 음악가이자 사업가로서 클레멘티가 이룬 성과는 당시로서는 정말 드문 케이스였습니다.

소나티네와 교육적 유산, 베토벤의 찬사

클레멘티는 약 110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그중에서도 작품 36번 소나티네 모음집이 가장 유명합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중급 단계에서 반드시 거치는 레퍼토리죠. 저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 클레멘티 소나티네를 자주 사용하는데, 멜로디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손가락 훈련에도 효과적이고, 난이도는 적당히 있으면서도 음악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조라서 정말 좋은 교재입니다.

하지만 클레멘티의 소나타 중 상당수는 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일부는 모차르트의 소나타보다 어렵다는 평가도 있죠. 모차르트는 심지어 자신의 누이 난네를에게 "클레멘티 소나타는 치지 마라, 큰 도약이 많아서 네 손의 자연스러운 가벼움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진심 어린 충고였는지, 아니면 여전히 클레멘티를 견제하려는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베토벤은 클레멘티를 극찬했습니다. 베토벤의 전기 작가 안톤 쉰들러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베토벤은 클레멘티의 소나타를 가장 아름답고 피아노다운 작품으로 여겼으며, 사랑하는 조카 카를의 음악 교육을 수년간 거의 전적으로 클레멘티 소나타로만 진행했다. 베토벤은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모든 거장 중에서 클레멘티를 최고 순위에 놓았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 역시 클레멘티 소나타를 열렬히 사랑했고, 체르니는 나중에 프란츠 리스트를 가르치면서 다시 클레멘티를 전수합니다. 이렇게 클레멘티 → 베토벤 → 체르니 → 리스트로 이어지는 교육 계보가 형성된 겁니다.

클레멘티가 남긴 교육적 유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Gradus ad Parnassum)'입니다. 이 제목은 '파르나소스 산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뜻인데, 파르나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성스러운 산으로, 여기서는 음악적 완성에 도달하는 과정을 비유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피아노 실력의 정상에 오르기 위한 단계별 연습곡 모음집이죠. 클레멘티는 1816년부터 1821년 사이에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이 작품집을 출판했는데, 쇼팽도 자신의 학생들에게 이 연습곡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같은 거장이 클레멘티 소나타를 녹음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1. 클레멘티는 약 110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으며, 작품 36번 소나티네는 전 세계 피아노 교육의 필수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2. 베토벤, 체르니, 쇼팽 등 후대 거장들이 클레멘티의 작품을 교육 과정에 적극 활용하며 그 음악적 가치를 계승했습니다.
  3.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은 피아노 테크닉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한 연습곡집으로, 오늘날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810년 58세가 된 클레멘티는 연주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작곡과 피아노 제작, 출판에 집중합니다. 그는 1813년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현재의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를 창립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고,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 후원했습니다. 1830년 78세의 나이로 공식 은퇴한 뒤, 그는 영국 우스터셔의 에브셤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1832년 80세의 나이로 짧은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는데, 이곳에는 그가 가르쳤던 존 필드도 함께 묻혀 있습니다.

결국 모차르트와 클레멘티, 누가 더 위대한 음악가였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문제입니다. 모차르트는 35세에 요절했지만 클레멘티는 80세까지 장수하며 엄청난 양의 작품과 업적을 남겼습니다. 오래 산 사람이 이긴 거 아니냐고 농담처럼 말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수명의 문제가 아니라 클레멘티가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의 발전에 기여한 공이 워낙 크기 때문에 '피아노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은 겁니다. 저도 장수하면서 좋은 작품 많이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클레멘티처럼 한 분야에서 이렇게 다방면으로 기여한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연주자, 작곡가, 교육자, 제작자, 출판업자, 사업가까지 모든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 그의 삶은 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케이스로 남아 있습니다.

--- 참고: https://youtu.be/ILItDewU04c?si=_aKCVqbM-jYjbSXn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Muzio-Clem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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