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의 '봄의제전' 초연 당시 파리 극장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과 예측 불가능한 리듬에 분노했고, 공연은 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는 작곡을 배우면서 이 일화를 듣고 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음악이길래 사람들을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왜 스트라빈스키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을까요. 봄의제전과 음악적 원시주의 스트라빈스키가 1913년 발표한 '봄의제전'은 음악적 원시주의(Musical Primitivism)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음악적 원시주의란 전통적인 조성 체계를 벗어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에너지를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수천 년 전 원시 시대의 제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거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피나 바우쉬가 안무한 대표작 '봄의 제전' 이 작품에서 스트라빈스키는 E장조와 E플랫장조 7화음을 동시에 울리는 폴리토날(Polytonal)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폴리토날이란 두 개 이상의 조성을 동시에 연주하는 기법으로, 당시로서는 극도로 불협화음적으로 들렸습니다. 저도 처음 이 부분을 들었을 때 귀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두 개의 다른 곡이 동시에 연주되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리듬 역시 혁명적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예측 불가능한 박자와 강세를 배치해 청중이 박자를 셀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 클래식 음악은 규칙적인 박자 구조를 따르는데, 봄의제전은 이를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제가 작곡 수업에서 이런 불규칙한 리듬을 시도했을 때 교수님께서는 "청중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고 조언하셨는데, 스트라빈스키는 오히려 그 혼란을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출처: MoMA ). 신고전주의 시기의 재해석 1920년대 들어 스트라빈스키는 돌연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는 18세기 바로크와 고전주의 음악 형식을 차용한 신고전주의(N...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듯 퍼져 나가고 있는 요즘, 현대에 와서는 클래식 음악이 많이 소외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은 전자기기로 이루어진 악기들, 앰프를 통해 증폭된 기타와 베이스, 드럼, 신디사이저 같은 악기들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기보다 SNS와 온라인에서 AI가 만들어낸 배경음악이 깔린 짧은 영상들을 보며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이런 시대 속에서 오랜 세월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음악을 듣는 일은 마치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평생을 바쳐 곡을 쓴 작곡가들, 그리고 그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인고의 세월로 버텨온 연주자들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악상을 떠올리는 고뇌의 시간 반대로 TV나 온라인에서 쉽게 접하는 음악들, 혹은 AI가 뚝딱 만들어낸 음악들은 내게 초가공식품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초가공식품을 계속 먹다 보면 어느 순간 유기농 음식이 그리워지듯,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음악들 사이에서 클래식 음악을 다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감을 놓치지 않고 악보에 옮기는 작곡가 그래서 이 글에서는 바로크 시대 이후 20세기 초까지 이어지는 20명의 위대한 작곡가를 통해 음악의 흐름을 한 번 살펴보려고 한다. 그들의 음악과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부모 세대가 즐겨 들었을 법한 음악들이기도 하다. 관현악곡이 연주되는 대공연장 물론 클래식 음악이 귀족층의 문화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지금도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클래식 음악이 젊은 세대에게서 멀어진 이유는 그런 사회적 배경 때문이라기보다...
비발디 하면 '사계'만 떠오르시나요? 스키장 이름으로만 알고 계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안토니오 비발디는 500곡이 넘는 협주곡을 남긴 바로크 시대의 거장입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 음악 시험에서 사계를 듣고 악장마다 주제가 다르다는 걸 배웠을 때, 음악에도 글쓰기처럼 '주제'가 있다는 사실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집에 라디오와 TV밖에 없던 시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경험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제 첫 관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제였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예술적으로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일곱 개의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고, 산 마르코 대성당 같은 곳에서는 화려한 종교 음악이 연주되었습니다. 비발디의 아버지는 실력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어린 안토니오는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우며 12세에 이미 아버지와 함께 연주회에 설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비발디는 25세에 사제 서품(聖職授任)을 받았습니다. 사제 서품이란 가톨릭 교회에서 성직자로 임명되는 의식을 말합니다. 붉은 머리 때문에 '붉은 사제(Il Prete Rosso)'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비발디는, 그러나 사제 업무보다는 음악에 더 몰두했습니다. 1737년 그가 쓴 편지에 따르면, 천식과 같은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인해 미사를 집전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핑계 삼아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에 전념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비발디는 피에타 자선원(Ospedale della Pietà)에서 약 30년간 바이올린 교사이자 작곡가로 일했습니다. 피에타는 고아 소녀들을 돌보는 시설이었는데, 이곳에서 음악 교육이 이루어졌고 여성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학자 샤를 드 브로스는 1739년 편지에서 "피에타의 소녀들은 천사처럼 노래하고 바이올린, 플루트, 오르간, 첼로 등을 뛰어난...